- 정해종 -
그냥 지나가야 한다
말 걸지 말고
뒤돌아보지 말고
모든 필연을
우연으로 가장해야 한다
누군가 지나간 것 같지만
누구였던가에 관심 두지 않도록
슬쩍 지나가야 한다
중요한 것은 그 누구의 기억에도
남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
그냥 죽어야 한다
경우에 따라선
몇 번을 죽을 수도 있지만
처절하거나 장엄하지 않게
삶에 미련 두지 말고
되도록 짧게 죽어야 한다
잊지 말아야 할 것은
그 죽음으로
살아남은 자의 생이 더욱
빛나야 한다는 것이다
인생이란 배당 받는 것이다
주어진 생에 대한 열정과 저주,
모든 의심과 질문들을 반납하고
익명의 정신으로 무장해야 한다
대개의 사람들이 그렇듯
세상에 한 번, 휙-
사소하게 지나가야 한다
다시 한 번 말하지만 끝끝내
우리는 배경으로 남아야 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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